어학연수23 유일한 취미생활 한국에서의 나는 취미생활이 꽤나 다양한 편이었다. 책을 읽거나 영화, 드라마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그림도 그리고 요리도 했다. 어제까지 재미있던 게 오늘은 하기 싫기도 했다. 취미생활 하나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내가 무언가에 쉽게 질리는 스타일인가 생각했는데 이제까지의 나를 돌아보면 (공부나 일이나 혹은 사람에 대해서) 또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본머스에 가서 어렴풋이나마 해답을 찾았달까. 영국에서 유일한 내 취미는 한 달에 한번 있는 볼링 소셜 프로그램이었다. 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한 달치 소셜 프로그램 일정이 나와있는데 우리 학원만 그런 건지 참여도가 굉장히 낮았다. 그중에서도 애들이 모이는 소셜 프로그램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볼링이다. 처음에는 같은 반.. 2020. 5. 13. 뜨내기 생활의 단점 어학연수를 하면서 느끼는 몇 가지 단점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친구들이 금세 떠나간다는 것이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어학연수생 치고는 짧지 않은 기간을 한 곳에서 보내면서 많은 친구들을 떠나보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겨울 시즌은 장기연수생이 많이 오는 시기이고 나는 그때 만난 친구들과 영국에서의 시간을 반 이상 함께 보냈다. 하지만 봄이 오면서 친구들이 한 번에 떠나갔다.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친구들이 하나 둘 가버리니 늘 함께하던 이곳도 낯설게 느껴지고 나만 여기 남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허전했다. 이런 헛헛한 마음에는 나의 개인적인 권태기도 한 몫 했다. 시기적으로 떠날 때가 다가오다 보니 처음처럼 친구를 사귀려는 노력도 하지 않게 되고 만사가 귀찮았다. 지금 영국.. 2020. 5. 7. 자연치유법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요즘 비치에 자주 나가 바닷바람을 맞아서인지 싸돌아다닌다고 밤늦게 들어와서인지 여기와서 처음으로 감기가 걸린 것이다. 전날에도 몸이 으슬으슬한 기분이 들었지만 감기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여기 와서는 항상 그런 추위를 느꼈기 때문이다. 영국 겨울의 추위는 한국과는 달라서 겨울 바람에 살이 에이는 느낌은 아니지만 비가 자주 와서 항상 습도가 높고 오후 4시면 깜깜해서 등골이 시렸다. 실제 기온 상으로는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한국에서만큼 패딩을 자주 입었다. 하룻밤 사이에 목소리가 달라져서 아침에 부엌에서 만난 진이 깜짝 놀랐다. 감기가 와서 그렇다고 했더니 레몬티를 만들어 주었다. 레몬 슬라이스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 말 그대로의 레몬티였다. 원래는 방.. 2020. 5. 5. 레일카드 턱걸이 구입 영국은 학생할인제도가 정말 잘 되어 있는 나라다. 영국 정식 대학생이 아닌데도 내가 가진 어학원 학생증으로도 학생할인을 받을 수 있다.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범위도 정말 커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거나 관광지에서 입장료를 내야 할 때는 물론이고 가게에서 화장품을 사거나 옷, 신발을 살 때에도 기본 10% 정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쇼핑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신발 살 때 한 번 학생할인의 맛을 본 뒤로는 물건을 살 때 학생할인여부를 물어보는 게 습관이 됐다. 기차나 코치(버스)를 탈 때에도 할인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었는데 레일카드나 코치카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버스를 잘 타지 못해서 기차를 주고 이용했고 레일카드만 발급받았다. 레일카드는 30£를 내고 일년동안의 회원권.. 2020. 5. 4. 다르지 않은 새해 옥스포드를 다녀 온 다음 날. 진의 둘째 아들 데인이 집에 와 있었다. 데인은 런던의 한 은행에서 펀드 매니저로 일하는데 집에 자주 오지는 못해도 올 때마다 진에게 꽃다발을 사다주는 로맨틱한 아들이다. 혼자 올 때도 있는데 이번에는 파트너와 함께 왔다. 평소에 못 보던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다들 친절하고, 이 또한 색다른 경험이 된다. 그리고 나에게는 리지가 있으니까. 새로운 학생은 이번 주 토요일에 온다. 나 말고 다른 학원에서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러시아 공항 관제탑에서 일하는 직원인데 회사에서 3년에 한번씩 보내주는 해외연수라고 한다. 겪은 바로는 러시아 사람들 성격이 좀 딱딱한 편이고 달랑 3주만 지내다 돌아가기 때문에 친해지기 쉽지 않아서 아쉽긴 하다. 나도 같이 놀 .. 2020. 5. 3. 한 달 만에 만난 캐리어 한 달 만에 드디어 캐리어 상봉. 어학연수 후에 여행을 계획중이라면 늘어난 짐은 보통 택배사를 이용해 미리 한국에 보낸다. 보통 런던우체국을 (런던에 있는 우체국이 아니고 이름이 런던우체국) 이용하는데 본머스에서는 코리안 그릴이라는 한식당에서 이 일을 맡아서 하신다. 짐을 보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어떤 물품이 들어있는지 리스트를 작성해서 드리고, 짐은 무게를 달아 가격을 책정했다. 그리고 입국 이틀 만에 서류를 꾸려서 한국 담당자에게 보냈는데 여기서부터 한 달이 넘게 걸린거다. 보낸 서류도 전화를 하자 그제야 확인했다고, 며칠이면 온다던 택배는 직원 실수로 누락이 되어 이제야 도착했다고, 드디어 짐을 받긴 받았는데 하나만 도착. 다른 하나는 물류창고로 돌아가 다른 짐과 섞였다가 애먼 서울로.. 2020. 4. 30. 마지막 학생 한국에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면서 진과 나는 한번씩 지난 시간에 대해 얘기했다. 처음 도착한 날 시차로 밥도 못 먹고 고생했던일, 엄마 얘기를 하면서 울었던 일. 그리고 그 끝에는 항상 시간이 참 빠르다, 아쉽다는 말을 하곤 했다. 진에게는 다니엘과 데인이라는 아들이 둘 있다. 아들들이 어렸을 때 가정에 소홀한 모습을 보이는 남편과는 단호히 이혼했다. 그리고는 사무 변호사로 일하며 아이들을 홀로 키웠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본머스의 집도 얻게 되자 호스트 패밀리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진은 젊었을 때 세계 방방곡곡을 다닌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경험이 호스트 패밀리로 일하는 데에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집안 곳곳에서 지금까지 다녀 간 학생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2020. 4. 30. 베드버그 노이로제 크리스마스 홀리데이가 열흘이나 되기 때문에 그 기간에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연말이라 비용도 비싸고 표를 구하기도 늦었기 때문에 런던과 옥스퍼드만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그 마저도 출발 몇 일 전까지 숙소를 구하지 못해 난감했다. 유럽 내에서도 런던과 파리는 숙박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도시인 데다가 위치가 좋으면 너무 비싸고 외곽으로 나가면 교통비와 시간이 아까워지는 딜레마에 빠졌다. 어찌어찌 한인민박 도미토리 한 자리를 예약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진은 나의 첫 여행이 걱정되었는지 (그때는 걱정이 아니라 오지랖으로 느껴졌으나) 이것저것 조언해주다가 예전에 홈스테이 했던 한국 학생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 학생이 런던에서 한인민박에 묵었고 거기서 베드 버그를 옮겨왔는데 그걸 진이 방청소를 하.. 2020. 4. 28. 보고싶은 Rizzy 영국 일기를 쓰는 이 블로그에서 닉네임으로 Rizzie를 쓰는 이유가 바로 이 개 때문이다. 처음 이 집에 갔을 때 리지는 이미 10살이 넘은 할머니였다. 집에 애완견이 있다고 해서 앙증맞은 요크셔테리어를 상상했던 터라 처음엔 적잖이 당황했다. 나이는 많지만 정말 활발하고 힘이 좋은 편이어서 집에 돌아오면 항상 터그놀이를 해달라고 방석과 공, 고무 장난감을 들고 왔다. 그런 리지가 현관문 소리에도 더 이상 짖지 않고 마중도 나오지 않았던 게 6월쯤부터였다. 상태가 심상치 않아 진이 병원에 데려갔는데 간암 진단을 받았다. 개는 사람과 달라 병세가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어느 날은 복수가 차올라 숨을 가쁘게 쉬고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처럼 힘들어했다. 그런 날엔 다니엘이 밤새 함께 있었는데 리지도 자기.. 2020. 4. 27. My Second Hometown 일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처음 수업에 들어갔을 때가 생생하다. 첫날이라 테스트만 받는 줄 알았는데 수업에 들어가게 되었고 비수기라 학생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들었는데 강의실은 꽉 들어차 있었다. 그때, 그 반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과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7개월까지 함께 했으니 몇 주 만에 왔다가 떠나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어학원에서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처음 들어간 반 담당 선생님에게도 6개월 동안 수업을 들었으니 정이 많이 들었다. 약간 무심한, 그러면서도 집에 초대하거나 따로 연락해주는 츤데레 같은 성격도 마음에 들었다. 얼마 전에 내가 공부했던 학원이 이제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갑자기 추억이 하나 없어지는것 같다고 친구들과 얘기를 했다. 작년, 본사가 스위스에서 독일 기업으로 넘어가면서 .. 2020. 4. 27. 언덕 위의 도서관 본머스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본머스 타운. 프라이막, 자라, 그리고 H&M을 지나 길을 건너지 말고 우회전하면 있는 큰 신식 건물이 도서관이다. 시설은 그냥 이용하면 되고 도서나 DVD를 대여하고 싶으면 회원증을 만들면 된다. 전해 듣기로는 어학원 학생증으로도 회원증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독서광도 아니고 영어로 된 책을 얼마나 읽을까 싶어 회원증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공부 할 일이 있으면 도서관에 자주 갔다. 열람실 같이 꽉 막힌 분위기가 싫어 한국에서는 주로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데 여기 본머스 도서관은 창가를 따라 원형 책상이 배치되어 있고 창도 커서 답답하지 않았다. 단점이라면 공부하러 갔다가 창 밖을 보며 멍만 때리다가 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 한 번은 나 같은 유학생이.. 2020. 4. 27. 풀, 영국 (Poole, England)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Poole Goes Vintage. 풀은 본머스 타운에서 M1 버스로 30분 정도면 간다. 같은 바다지만 본머스의 해변과 다르게 요트가 정박된 럭셔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LUSH 본점이 여기에 있어서 작지만 유명한 곳이다. 빈티지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 여러 곳 있는 것 같은데 여기는 가기에도 쉽고 작년에 다녀온 동생이 재밌었다고 해서 시간을 내서 가보았다. 페스티벌 날짜를 알고 가긴 했는데 몇 시에 어느 포인트에서 시작하는지는 몰라서 Dolphin Shopping Centre에 내릴 때까지도 동네가 너무 조용해 긴가민가 했다. 그런데 바닷가로 나오자마자 아래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클래식카가 줄지어 전시되어 있고 빈티지 의상을 입고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2020. 4. 27.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