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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Rizzy

by Rizzie 2020. 4. 27.

 

 영국 일기를 쓰는 이 블로그에서 닉네임으로 Rizzie를 쓰는 이유가 바로 이 개 때문이다. 처음 이 집에 갔을 때 리지는 이미 10살이 넘은 할머니였다. 집에 애완견이 있다고 해서 앙증맞은 요크셔테리어를 상상했던 터라 처음엔 적잖이 당황했다. 나이는 많지만 정말 활발하고 힘이 좋은 편이어서 집에 돌아오면 항상 터그놀이를 해달라고 방석과 공, 고무 장난감을 들고 왔다.

 

 그런 리지가 현관문 소리에도 더 이상 짖지 않고 마중도 나오지 않았던 게 6월쯤부터였다. 상태가 심상치 않아 진이 병원에 데려갔는데 간암 진단을 받았다. 개는 사람과 달라 병세가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어느 날은 복수가 차올라 숨을 가쁘게 쉬고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처럼 힘들어했다. 그런 날엔 다니엘이 밤새 함께 있었는데 리지도 자기의 상태를 아는지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도 하곤 했다.

 

 리지가 아프고 나서 진과 다니엘은 매일 아침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집에서는 그렇게 힘들어하던 리지가 바닷가에서는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고 말로 전해 들을 뿐이었다. 진은 리지가 고통을 느끼는 걸 원치 않았고 그 날이 오면 먼저 보내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채로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어느 날 아침을 먹는데 리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겠냐고 물었다. 상태를 보고 오늘 오후 병원에 가서 리지를 보내주려고 한다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 리지는 컨디션이 매우 좋았고 멀쩡하게 집에 왔다. 이틀 정도 후에 Rizzy is fine이라고 하길래 잘됐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게 잘 갔다는 표현일 줄 상상도 못 했다.

 

 며칠 동안 안보이길래 안부를 물었다가 리지가 가던 날의 자세한 얘기를 듣게 되었고 진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펑펑 울었다. 아침 산책을 기다리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니.

 

 진은 나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 또한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는 리지가 그냥 건강히 있어주기를, 내가 간 뒤에 무지개다리를 건너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일을 함께 겪을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다. 진과 다니엘의 큰 상실의 순간에 함께 있어 줄 수 있어 다행이고, 나의 소중한 영국 가족 중의 하나인 리지의 마지막을 함께 보낼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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