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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치유법

by Rizzie 2020. 5. 5.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요즘 비치에 자주 나가 바닷바람을 맞아서인지 싸돌아다닌다고 밤늦게 들어와서인지 여기와서 처음으로 감기가 걸린 것이다. 전날에도 몸이 으슬으슬한 기분이 들었지만 감기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여기 와서는 항상 그런 추위를 느꼈기 때문이다. 영국 겨울의 추위는 한국과는 달라서 겨울 바람에 살이 에이는 느낌은 아니지만 비가 자주 와서 항상 습도가 높고 오후 4시면 깜깜해서 등골이 시렸다. 실제 기온 상으로는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한국에서만큼 패딩을 자주 입었다.

 

 하룻밤 사이에 목소리가 달라져서 아침에 부엌에서 만난 진이 깜짝 놀랐다. 감기가 와서 그렇다고 했더니 레몬티를 만들어 주었다. 레몬 슬라이스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 말 그대로의 레몬티였다. 원래는 방에서 음식물은 먹을 수 없지만 내가 아프니까 해주는 거라며 진이 인심을 썼다. 이게 뭐라고 선심 쓰듯이 얘기를 해서 그 와중에도 헛웃음이 나왔지만 고맙다고 컵을 받아들고 2층으로 올라왔다. 다행히 나에겐 한국에서 가져온 감기약이 있으니까.

 

 영국에서는 병원가기가 정말 어렵다. 유학생이라서 어려운 게 아니고 그냥 어렵다. GP 등록을 해도 감기 몸살 같은 걸로는 의사 코빼기도 보기 힘들 것이다. 친구 중의 하나도 감기가 심해 병원에 갔는데 4시간을 기다리다가 그냥 집에 돌아갔고 우리 학원 선생님도 다리가 접질린 채로 6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누군가는 NHS가 이미 붕괴된 시스템이라고 했지만 나라에서 모든 병을 무료로 책임져 준다는 점이 영국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자부심인 듯 했다.

 

 그래서 영국 사람들은 웬만한 병으로는 병원에 가기보다 자연치유법으로 이겨내는 편을 선호한다. 영국에서 지냈던 게 한없이 그립다가도 '그래도 한국이 좋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런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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