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23 머리카락에 심폐소생술 영국에 온 지 5달째가 되어 가면서 머리가 아주 엉망이 되었다. 사실 머리는 묶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신경 안 썼는데 문제는 스타일이 아니라 머릿결이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영국은 물에 석회질이 많은데 이 물로 씻고 마시기까지 해야 하니 예민한 사람이라면 문제가 된다. 다행히 물갈이는 하지 않았지만 머릿결은 한국에서도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나는 반곱슬에 숱이 많아 영국의 우중충한 날씨에 단점이 배가 되어서 헤르미온느랑 하이파이브할 뻔했다. 그래서 비싸다는 미용실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안 그래도 머리 하는 게 아까웠는데 실패는 겪기 싫어서 한인 미용실을 예약했다. Wimborne Road에 있는 Amabile Hair였는데 이름이나 외관에서는 한인 미용실임을 알 수.. 2020. 4. 27. Come back home, and 약 300일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돌이켜 보면 한 없이 짧게 느껴지는 영국 생활이지만 느낀 점이 많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았을까? 좀 더 일찍 경험했더라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런 후회 섞인 감정도 드는 한 편, 지금이라도 이런 걸 알게 되고, 느끼게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생긴다. 물론 어학연수를 하고 여행을 다니는 데에 적지 않은 돈을 쓴 것도 사실이고 앞으로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 것이 막막하긴 하다. 1년의 어학연수로 삶이 180도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전과는 다르다는 걸 매 순간 느낀다. 이전의 나는 100% 준비가 되고 나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80%의 나에게 20%의 용기를 더해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이 감정을 .. 2020. 4. 26. 영국에서 날씨란 영국의 날씨는 소문대로 변화무쌍하다. 겨울에는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다. 비가 많이 와서 습하고 축축한 날씨 때문에 체감 기온이 낮고 특히 내가 있던 곳은 바닷가 마을이어서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어학연수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고민하던 때에 유학원 담당자가 나에게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지 물어보았다. 그땐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는데 영국에 도착해서 일주일도 되지 않아 깨달았다. 아침엔 해가 쨍하다가 점심 즈음 갑자기 비바람이 분다. 집에 어떻게 가지 고민했던 게 무색하게 오후에는 다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이런 날씨에 일기예보보다 정확한 게 있었으니 호스트 맘, 진이다. 신기한 마음에 물어봤는데 영국 사람이라면 아침에 하늘만 봐도 알 수 있다.. 2020. 4. 26. 아주 다른 크리스마스 풍경 12월에 접어들면서 본머스 타운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다. 오두막 모양의 노점에서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먹을 것들을 팔고 Lower Garden에는 화려한 조명과 아이스링크장이 생겼다. 스퀘어의 간이 무대에서는 때때로 공연도 열렸다. 언제 이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뚝딱 생겨났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해가 너무 짧아져 오후 수업이 끝난 4시면 밤이 되어 버리지만 크리스마스 마켓 때문에 이유 없이 타운으로 발걸음이 향할 때가 많아졌다. 가게에서는 크리스마스 프로모션과 세일이 진행 중이고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족들과 함께 나와 핫초코와 멀드와인을 나눠 마시고 아이들은 아이스링크장에 줄을 섰다. 1년 여 시간 동안 향수병이라곤 몰랐던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그리웠던 때가.. 2020. 4. 24. 초콜렛 주의보 영국에 오면서 가장 걱정 했던 것 중의 하나는 음식이다. 맛 없기로 유명한 영국 음식 때문이 아니라 빵, 면 등의 밀가루 음식이 주식인 곳에서 과연 변비, 피부 트러블 없이 지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TMI 이지만 한국에서 변비와 피부 트러블로 고생할 때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께서 밀가루 음식을 아예 끊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영국에서 와서 매일 아침 씨리얼과 토스트를 먹고, 점심과 저녁으로도 피자와 파스타를 먹어도 신기하게 괜찮았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매일 저녁 진이 챙겨주는 요거트, 아니면 같이 먹는 채소 덕분인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요 며칠 얼굴에 뾰루지가 생겼다. 한국에서 겪었던 것들에 비하면 정말 소소하지만. 최근에 초콜렛을 많이 먹어서 인 것 같다. 진이 크리스마.. 2018. 12. 12. The 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 본머스 생활 한 달째,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고 여기 생활도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느낌이다. 매일 아침 시리얼과 토스트를 먹고 20분 남짓 걸어서 학교에 갔다가 수업이 끝나면 홈스테이 집에 돌아와 하루 일과를 간단하게 다이어리에 정리한 다음 6시가 되면 진, 로만, 때로는 다니엘도 같이 한 시간 남짓 대화하며 저녁식사를 한다. 그리고 다시 내 방으로 올라와 그 날 공부한 것들을 노트에 다시 정리하고 10시나 11시쯤 잠을 잔다. 오늘도 저녁식사를 하며 진과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하마터면 울 뻔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건 좋지만 그게 가끔은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게 만드는 이유가 돼요, 가족들은 내가 실패하는 걸 바라지 않으니까요. -그건 실패가 아니야, 다니엘은 작년에 태국을 여행했는데 정말 별.. 2018. 12. 7. 생애 최초 아라비안 레스토랑 본머스는 도시의 규모에 비해 어학원이 참 많은 편이다. 바다가 인접한 작은 휴양도시에 불과한데 우리 어학원 근처에도 몇 개의 다른 어학원이 더 있다. 알기로는 해안 근처에도 여러 개의 어학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종도 다양하고 여러 나라의 레스토랑도 많이 있다. 같은 반 동생이 금요일 아랍 친구들의 모스크 기도 끝나면 식당에 간다고 알려주었다. 사실 아라비안 학생들은 대부분 나이가 정말 어리고 조금 산만한 편이라 어울리기 어려운데 아라비안 레스토랑은 우리나라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이라 한번쯤 경험하고 싶어 따라 나섰다. 모스크 기도가 끝나는 2시 즈음에 맟추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메뉴는 양고기, 닭고기 중에 고를 수 있었는데 무난하게 치킨을 골랐다. 코를 찌르는 듯한 향신료 냄새에 처음엔 인디안.. 2018. 11. 17. 시간을 거슬러 온 사람 유럽은 서머타임 제도가 있어서 우리나라와의 시차가 일정하지 않다. 3-10월에는 8시간, 지금은 9시간 한국 시간 보다 늦게 흐른다. 영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대화를 할 때면 내가 한국에서 시간을 거슬러 왔구나 하는 기분이 항상 든다. 한국에서는 일요일이 끝나가는 늦은 오후, 나는 이제서야 느즈막히 일요일 아침을 시작하고 자려고 침대 위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으면 출근하는 동생에게서 메신저가 날아온다. 영국에 오기로 결심한 데에는 영어 만큼이나 큰 이유가 바로 시간을 벌고 싶었던 것인데,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온 사람처럼 살게 되니 느낌이 더욱 묘하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학교 다닐 때에는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했는데 어른이 된 나는 속절없이 앞서가는 시간을.. 2018. 11. 15. 나의 첫 왓츠앱 친구, 와파 여름과 겨울방학은 인접한 유럽국가 학생들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어학원의 극성수기다.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만나길 기대했다면 지금 같은 비수기의 모습에 실망할지도. 우리 반은 14명 남짓인데 그 중 10명 정도가 아랍에서 온 학생들이다. 어학원 전체에 한국 학생이 5명인 것에 비하면 정말 많은 수치다. 들어보니 대다수 아랍 국가에서 국비로 유학을 지원하기 때문에 학생들 입장에서는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애초에 한국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겠다거나 하는 생각이 없었고 어학원의 학생들의 국적 비율에 민감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 아랍 학생들인 이 클라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먼저 외워야 했다. 와파는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먼저 이름을 물어보고 외웠던 친구다. 1.. 2018. 11. 14. 헬로우, 진 영국 비자를 받을때 뚜렷한 이유와 거취가 있으면 보다 수월하다. 그래서 나도 어학원을 통해 홈스테이를 신청했다. 그래도 영국까지 가서 홈스테이는 한 번 해봐야지 하는 가벼운 생각이었는데 도착하기 전까지 어떤 집에서 어떤 사람과 함께 지내는지 알 수 없어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한국에서 내가 받아 본 정보는 호스트, 진에게 아들 한 명과 개 한마리가 있고 세계요리와 가드닝이 취미라는 것이 전부였다. 자그마치 12시간에 넘는 비행을 마치고, 차로 또 두 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집에서 처음으로 진과 리지(강아지)를 만났다. 진은 생각보다 나이가 있는 할머니였고 아들, 다니엘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였다. 리지는 귀여운 강아지와는 거리가 멀었고 생김새는 불독에 가까웠지만 정말로 프렌들리했다. 모든 점이 내 예.. 2018. 11. 10. 갑자기 영국 갑자기, 혹은 오랜 고민 끝에 영국에 왔다. 왜 영어를 그렇게 배우고 싶어요? 영어를 굳이 왜 외국에 나가서 배우려고 해요? 많은 사람들이 물었지만 나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몰랐고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가봤자 별 거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보이려고 명확한 이유를 수도 없이 찾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만, 학교를 다닐 때부터 어학연수에 대한 어떤 동경 같은 건 있었다. 그때는 '나는 동생도 둘이나 있고 돈도 많이 드는데 굳이 어학연수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어떤 자기 합리화를 했던 것 같다. 취직을 할 때까지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는데 회사에 들어와보니 그게 또 마냥 그렇지도 않았다. 우리 회사에는 해외 업무를 담당하는 팀이 따로 있었는데 나는 상사의 대우 때문에, 혹.. 2018. 11. 8.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