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에 이곳이 빠질 수 없지. 무릇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피렌체는 그렇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머무르며 로마가 익숙해질 때쯤 피렌체로 갔다. 한여름 복작복작한 관광객들 틈으로 커다란 캐리어를 힘겹게 끌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이 어딘지 낯설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는 기차만 두 번을 탔는데 소매치기에 대한 무성한 소문을 듣고 워낙 조심해서인지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식겁했던 일은 나중에 파리에서 일어났다)
기차역에 내려 처음으로 든 생각은 따뜻하고 아늑하다는 것이었다. 로마에서는 어쩐지 한 나라의 수도라기엔 황량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는데 피렌체는 조금 달랐다. 피렌체의 색깔은 따뜻한 베이지 톤이었고 도시 한 가운데에는 강물이 낮이나 밤이나 여유롭게 흐르고 사람들의 움직임도 바쁘지 않고 일상적이었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도시, 그 도시의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특별한 분위기였다. 영국에서 지냈던 본머스에서도 이런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 덕에 바다를 싫어하는 나도 거의 매일 해변으로 가 시간을 보냈다.
피렌체에서 지냈던 숙소도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기차역에서 가까우면서도 길가에 있어 무섭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여행하면서 호텔, 호스텔, 에어비앤비, 한인민박까지 거의 모든 숙박 형태를 경험한 것 같은데 한인민박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매일 밤 벌어지는 술판이다. 나 같이 알쓰이면서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큰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었는데 이 곳은 그런 게 없었다. 사장님도 첫날 숙소 설명, 매일 아침 식사 세팅 정도만 신경 써 주시고 일절 터치가 없었다. 언젠가 다시 가면 계실까. 사장님의 미적 감각이 느껴지는 인테리어도 참 멋있는 곳이었다.
피렌체 이곳 저곳 다니며 가장 좋았던 것을 꼽으라면 단연 노을 지는 풍경이다. 하루 종일 머리 꼭대기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던 태양이 땅의 열기까지 머금어 무거워지기 시작하면 베키오 다리나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올라간다. 혼자 여행하면서 필수품 아닌 필수품이 되어버린 이어폰도 지금 이 시간에는 정리해서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사람들 말소리와 섞여 멜로디만 남은 버스커의 노래를 배경 삼아 동그란 해가 강물 밑으로 가라앉는 걸 지켜보았다. 그 당시 찍은 영상을 요즘도 가끔 보면 그때의 더운 공기와 풀 냄새가 코 끝에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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