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럽여행 시작점, 로마. 하필이면 이때 유럽에 어마어마한 더위가 찾아왔다. 영국은 이렇게 더운 날이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인데 더위에 단련되지 못한 개트윅 공항 활주로에 문제가 생겨 비행기가 몽땅 지연되거나 취소됐다. 내가 출발하던 날은 그로부터 이틀 뒤였는데 그때까지도 정상화가 안됐다. 오후 8시 반 비행기인데 밤 12시에 게이트 번호가 나오고, 새벽 3시에 비행기를 탔다. 시작부터 삐걱거리나 싶었는데 밤새 기다려주신 한인 택시 기사 아저씨와 민박집 사장님 덕에 그나마 괜찮았다.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자 눈길 가는 곳 모두 유적지였다. 발 닿는 모든 곳에 역사가 살아있는 기분은 참 묘했다. 거의 한숨도 못 잤지만 씻고 바로 나갔다.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우연히 한 피자집에 들어갔는데 이탈리아에서 먹은 것 중 손에 꼽히는 음식이었다.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친구와 로마의 휴일을 봤는데 그때 봤던 풍경들이 눈 앞에 총천연색으로 펼쳐지다니 모든 순간이 꿈같았다. 로마의 휴일 영향인지 스쿠터 투어를 할 수 있는 회사들이 관광지 근처에 줄지어 있었다. 테러 경보 때문에 관광지마다 군인, 경찰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는데 안도감보다 총을 멘 군인들이 더 무서웠다. 덕분에 잡상인은 별로 못 봤다지.
트레비 분수는 왜인지 가까이 못 가게 해서 동전을 던지기가 쉽지 않았다. 뒤로 돌아 어깨너머로 던져서 물에 퐁당 빠뜨려야 되는데 두 번째 만에 성공했다. 나는 가는 곳마다 투어나 오디오 가이드를 꼭 하는 편인데 포로 로마노 오디오 가이드는 정말 별로였다. 그늘이 하나도 없어서 오래 서있기도 힘들뿐더러 듣다 보면 그게 그 설명. 차라리 짤막하게 각각의 조형물이 어떤 용도로 쓰이던 건지 푯말을 붙이는 편이 낫겠더라. 게다가 오디오 가이드 용으로 나눠주는 화웨이 폰은 GPS를 잡는 실력이 정말 최악이었다.
유럽 여행 중에 했던 투어 중 최고였던 바티칸 투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내 여행 스타일이 아니어서 좀 고민했는데 가격도 비싸지 않고 특히 바티칸은 투어 없이 가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을 듣고 신청했다. 7시 반인가에 지하철역 모임 장소에 모였는데 투어를 진행하는 회사는 또 얼마나 많고 그걸 들으러 온 한국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한국 돌아오던 비행기 말고 거기서 한국 사람을 제일 많이 봤다. 모여있는 무리가 너무 많으니까 투어 회사를 잘못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입장 전에 줄 서서 한 시간 반 동안 설명 들었는데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다. 가이드님 말솜씨가 너무 좋으시고 중요한 것,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만 골라서 알려주셔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여행지에서 한국인 많이 만나는 것 싫고, 다른 사람들 다 가는 곳에 가는 건 별로라는 데에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나 때문에 밤을 꼴딱 새웠는데도 괜찮다고 내 걱정 먼저 해주셨던 민박집 사장님이나 한인 택시 기사님, 스페인 계단에서 기꺼이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사진 찍어주신 아저씨, 투어에서 만나서 재밌었던 나 같이 혼자 온 친구 모두 다 기억에 남는다. 이 코로나가 끝나면 그분들이 무사히 그 자리 그대로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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