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면서 진과 나는 한번씩 지난 시간에 대해 얘기했다. 처음 도착한 날 시차로 밥도 못 먹고 고생했던일, 엄마 얘기를 하면서 울었던 일. 그리고 그 끝에는 항상 시간이 참 빠르다, 아쉽다는 말을 하곤 했다.
진에게는 다니엘과 데인이라는 아들이 둘 있다. 아들들이 어렸을 때 가정에 소홀한 모습을 보이는 남편과는 단호히 이혼했다. 그리고는 사무 변호사로 일하며 아이들을 홀로 키웠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본머스의 집도 얻게 되자 호스트 패밀리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진은 젊었을 때 세계 방방곡곡을 다닌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경험이 호스트 패밀리로 일하는 데에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집안 곳곳에서 지금까지 다녀 간 학생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마치 진의 인생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진에게 내가 마지막 학생이 된 건 일련의 사건이 겹치면서다.
한번은 이탈리아에서 나이가 좀 있는 어학연수생이 왔다. 리지가 한창 아플 때라 진이 리지가 먹는 것에 아주 공을 들였는데, 우스갯소리로 우리보다 리지의 식비가 더 많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많이 신경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 학생은 자기도 바로 지난 달에 키우던 강아지를 잃었기 때문에 십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런데 학생이 떠나고 학원으로부터 컴플레인을 받았다. 개가 먹는 것을 학생에게 준다는 내용이었다.
리지가 아픈 와중에도 침대 시트를 때마다 갈아주고 저녁밥을 놓친 적이 없었는데 그 컴플레인 얘기를 듣고 그 학생과 웃고 포옹했던 게 떠올라 좀 무서워졌다. 다진 고기를 사서 볼로네즈를 만들었는데 남은 고기를 강아지에게 주었다. 그렇다고 개가 먹는 걸 우리가 먹은 건 아니잖아?
이런 일들이 잇따르고 리지, 런던에 사는 친척, 가까운 친구의 죽음이 연달아 닥치면서 진은 조금 지치고 회의를 느꼈던 것 같다. 어느 날 학생들의 방명록으로 이용했던 노트에 편지를 적어주었는데 책상 위에 올려진 노트를 보고 읽고 또 읽으며 조금 울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다시 본머스를 찾는 날에 진이 건강하고 활기찬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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